말갈족은 발해를 세운 주역 중 하나지만, 지금은 이름조차 낯선 이들이 많죠. 하지만 말갈족의 언어를 알면 고대 동북아 역사의 흐름이 보입니다. 그들은 퉁구스계 언어를 썼을까요, 아니면 고구려어에 가까웠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언어 문제를 넘어, 발해의 정체성과 한국사, 만주사까지 연결되는 흥미로운 퍼즐입니다. 지금부터 이 신비한 언어의 흔적을 함께 추적해 보겠습니다.
시계 앞 버튼
말갈족은 지금의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살던 부족 연합체였습니다. 사냥과 농사를 하며 살았고, 고구려와 오랫동안 협력하거나 싸우기도 했죠. 특히 고구려가 멸망한 뒤, 대조영과 함께 발해를 세운 세력이 바로 말갈족이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부족이 모여 살아온 만큼, 그들의 언어도 한 가지로 단정짓기 어렵다는 것이 시작점입니다.
시계 앞 버튼
많은 학자들이 말갈어를 퉁구스계 언어로 봅니다. 왜냐하면 말갈족은 나중에 여진족으로 이어지고, 여진족은 또 만주족이 되어 청나라를 세웠기 때문이죠. 퉁구스계 언어에는 만주어, 에벤키어, 나나이어 등이 있는데, 말갈 관련 지명이나 용어 중 일부가 이 언어들과 유사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솔빈’ 같은 지명은 퉁구스어 계열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시계 앞 버튼
한편 일부 한국 학자들은 말갈족이 고구려어와 가까운 언어를 썼다고 주장합니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의 연합 국가였고, 실제로 고구려 출신 지배층과 말갈인들이 함께 살면서 언어적 융합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삼국사기》에서는 말갈을 고구려의 ‘속민’ 혹은 ‘친민족’처럼 표현한 기록도 있습니다. 고구려어가 한국어의 뿌리 중 하나로 여겨지는 만큼, 말갈어도 한국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입니다.
시계 앞 버튼
중국의 《신당서》, 《구당서》 등 역사서에는 발해와 말갈에 대한 지명, 인명, 관직명 등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남해현’ 같은 행정명은 고구려식 작명 방식과 유사하고, 어떤 이름은 퉁구스계 언어의 특징을 보이기도 합니다. 즉, 어떤 용어는 만주 계열이고, 어떤 용어는 한반도 계열이라는 겁니다. 이런 점은 말갈족이 단일한 언어가 아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였음을 시사합니다.
시계 앞 버튼
사실 말갈족은 하나의 종족이 아니라 여러 부족이 연합한 집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지역별, 시대별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초기에는 퉁구스계 언어를 주로 사용했지만, 발해가 성장하면서 고구려어를 일부 흡수하거나 함께 사용하는 ‘이중 언어 환경’이 되었을 수도 있죠. 현대학자들은 말갈어를 단순한 한 가지 언어가 아닌, 복합 언어 또는 변형된 방언 체계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습니다.
시계 앞 버튼
말갈족의 언어는 퉁구스계였을까요, 고구려어였을까요? 지금까지의 연구를 보면, 정답은 하나가 아닙니다. 말갈족은 다양한 부족으로 이루어졌고, 발해라는 다민족 국가 속에서 언어도 자연스럽게 섞이고 변했을 것입니다. 즉, 말갈어는 퉁구스어를 뿌리에 두면서도 고구려어의 영향을 받은 혼합 언어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언어는 그 민족의 삶과 역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말갈어는 단지 말이 아니라, 고대 동북아시아의 융합과 적응의 상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