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7일 화요일

『구당서』와 『신당서』에 나타난 말갈의 역사와 문화 탐구

중국의 정사(正史)는 주변 민족의 모습을 기록한 귀중한 사료다. 그중에서도 『구당서』와 『신당서』는 당나라 시기에 편찬된 대표적 역사서로, 고대 동북아 민족인 **말갈(靺鞨)**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말갈은 단순한 변방 민족이 아닌, 고구려·발해와 긴밀하게 얽힌 실체 있는 존재였습니다. 본 글에서는 『구당서』와 『신당서』에 나타난 말갈 관련 기록을 비교·분석하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문화적 특징을 지녔는지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나타난 말갈의 역사와 문화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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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서』와 『신당서』 모두 말갈을 퉁구스계 북방 민족으로 보고 있으며, 거주 지역은 만주 북부에서 연해주까지 넓게 퍼져 있었다고 기록 합니다.
두 사서는 말갈을 여러 부족으로 구성된 통합체로 기술하고 있으며, ‘흑말갈’, ‘백말갈’, ‘속말말갈’ 등 다양한 분파가 존재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1. 『구당서』에서는 말갈이 고구려에 속해 있었으나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 존재로 묘사됩니다.

  2. 『신당서』는 이후 말갈이 발해에 포함되어 통일적 질서를 수용하며 국가화된 민족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공통적으로 말갈은 ‘오랑캐’로 폄하되지 않았고, 역사적 실체와 영향력을 인정받은 집단으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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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서』는 말갈의 부족 분산적 특성을 주목합니다. 각 부족은 산악·하천을 따라 흩어져 살며, 때로는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외세가 침입하면 연합해 대항하기도 했었습니다. 흑말갈과 백말갈 등은 지리적 환경에 따라 생활 방식도 달랐었는데, 이는 단일 민족이 아닌 문화권 연합체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신당서』는 발해 시대 이후의 말갈을 다루며, 일부 부족이 발해 중앙 정부에 편입되어 지방 행정 단위로 정비된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갈 사회가 단순한 유목·수렵 부족을 넘어서, 국가 행정체계에 통합된 민족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기록은 말갈이 단순히 떠도는 유목민이 아닌, 강한 자치성과 정치적 유연성을 가진 공동체였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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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서』는 말갈인의 수렵 중심 생활을 집중 묘사합니다. 그들은 사슴·곰·멧돼지를 사냥하고, 강에서는 물고기를 잡아 식량을 얻었습니다. 또한, 겨울에는 눈 위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눈신(雪履)**을 착용했다는 기록도 등장합니다. 이는 고대 북방 민족의 실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한편, 『신당서』는 말갈 일부 부족이 정착 농경을 겸하고, 소·말을 키웠으며, 가옥과 마을 단위 생활을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발해 내 말갈 부족은 벼농사와 수공업까지 했고, 불교의 영향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말갈이 단일한 ‘유목민’이 아니라, 환경과 정치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는 복합 문화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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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서』에서는 말갈이 고구려의 군사 동맹 또는 속국으로 등장합니다. 말갈 병사들은 기습전과 산악전에서 강한 전투력을 발휘했었고, 고구려와 함께 당에 맞서 싸운 일화도 있습니다. 반면, 고구려 멸망 이후 일부 말갈 부족은 당에 복속되기도 했었고, 당은 이들을 변방 방어의 병력 자원으로 활용했습니다.

『신당서』에선 발해의 건국 이후 말갈이 어떻게 발해의 핵심 구성 민족으로 흡수되었는지 상세히 기록합니다. 특히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이 속말말갈 출신이라는 점은, 말갈이 단지 병력 제공 민족이 아닌 역사 주체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결국 말갈은 외세의 지배를 받는 수동적 민족이 아닌, 군사·정치적으로 능동적이고 전략적 역할을 수행한 세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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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역사서는 당나라 중심의 시각에서 쓰였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특히 말갈에 대한 묘사는 종종 중국 중심적 가치관에 의해 왜곡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말갈의 풍습이나 언어는 ‘미개’하거나 ‘야만적’으로 기술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말갈이 다양한 생활 방식, 정치적 대응 전략, 문화 수용력을 지닌 복합 민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당서』와 『신당서』는 비록 외부자의 기록이지만, 동북아 고대사와 말갈 문화의 실체를 추적할 수 있는 소중한 창구입니다.

무엇보다 이 기록은 말갈을 역사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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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서』와 『신당서』는 단순히 말갈의 이름만 남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구조, 정치, 문화, 존재감을 비교적 풍부하게 담아낸 기록입니다.

  1. 『구당서』는 고구려 말갈, 수렵 중심의 자치 부족 사회를,

  2. 『신당서』는 발해 말갈, 정착과 문명화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말갈이 단지 변방의 유목민이 아니라,
동북아 질서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 능동적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갈에 대한 재조명은, 우리 고대사의 빈틈을 메우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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